2. 구타니야키의 부활

(19세기)
百合図平鉢 (Lilly Bowl by Yoshidaya Kiln)

에도시대 후기는 고쿠타니 제작 중지 이후 끊긴 구타니야키의 제작이 부활하고 또 아카에 (赤絵) 스타일이 탄생한 시기입니다.

고쿠타니 제작 중지로 부터 약 100년 후 다이쇼지 번의「본가의 번」인 가가 번의 성하도시: 가나자와에서 자기 생산이 재계되었습니다. 교토의 자기 장인의 기술 도입에 의해 가가지방 (현재의 이시카와현) 에서 다시 자기가 만들어진 것 입니다. 이 시도는 단기간에 끝나지만 새롭게 전해진 기술과 고쿠타니의 독창적인 다자인을 결합하여 구타니야키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인물이 다이쇼지에 나타납니다.

松図瓢形大瓶 (Gourd-shaped Pine Flagon by Miyamotoya Kiln)

요시다야 덴에몬. 다이쇼지 성하 마을에 사는 부유한 상인이였던 그는 구타니야키, 그 중에서도 아오데코쿠타니의 부활을 염원하여 1824년 자기 재산을 드려 고쿠타니 가마 옆에 자기 제작을 위한 도자기 요장을 세웠습니다. 그 요장은 그의 상호에 따라 요시다야 가마라고 불리고 고쿠타니에 준하는 예술성과 품질로 당시의 부유층과 지식인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채산을 도외시한 품질 추구는 요시다야 가마의 경영을 압박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통이 편리한 야마시로 지구로 가마를 이축 했으나 7년후인 1831년에는 폐쇠를 하게되었습니다.

마시로의 요시다야 가마는 폐쇠직후 현장 지배인이였던 미야모토야 우에몬에게 인계되어 미야모토야 가마로 재계했습니다. 미야모토야는 가가 번 자기의 영향 으로 아카에를 채용했습니다. 주임 화배공인: 이다야 하치로에몬이 아카에의 치밀한 묘사가 뛰어난 것에 의해 미야모토야 가마의 아카에 작품도 다시 높은 평가를 받아 요시다야 가마와 같은 민영 가마임에도 불구하고 20년 이상 조업을 계속했습니다.

双馬図平鉢 (Dual Hourse Bowl by Matsuyama Kiln)

요시다야 가마의 폐쇠로 약해진 아오데 구타니야키의 제작이 였지만 1848년 다이쇼지 번이 새로 세운 마쓰야마 가마로 다시 번성해졌습니다. 메이지 정부에 의해 번의 조직이 해체될 때까지 차 세대에 활약할 장인을 키워 가면서 마쓰야마 가마는 아오데 구타니야키 제작에 힘썼습니다.